치수공차의 한계
치수공차체계는 길이, 지름, 각도처럼 크기와 범위로 형상을 통제한다. ±0.05, ±0.1. 표현은 단순하고, 규칙은 직관적이다. 누구나 빠르게 읽고, 누구나 빠르게 쓸 수 있다.
그 단순함은 곧 한계이기도 하다. 면이 얼마나 평면이어야 하는지, 두 면이 얼마나 평행해야 하는지, 구멍이 얼마나 정확한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를 치수공차는 표현하기 어렵다. 말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이를 표현할 수단이 없다.
치수공차는 쉬운 악보다. 표현이 단순하니 쉬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쉬운 악보라기 보다는 단순한 악보에 가깝다. 가장 단순한 악보에는 타악기 악보가 있다. 타악기 악보는 언제 칠지만 표현할 수 있고, 표현한다. 무슨 음인지는 표현할 필요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다. 리듬은 담아도 음정은 담지 못하는 구조다. 치수공차도 마찬가지다. 크기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적을 수 있지만, 그 형상이 어떤 자세로, 어떤 관계로 존재해야 하는지는 애초에 적을 방법이 없다. 쉬운 게 아니라, 못 담는 것이다.
악보 기호가 없다면
작곡가의 머릿속에는 소리가 있다. 리듬이 있고, 강약이 있고, 어느 음에서 멈추고 어느 음으로 이어지는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기록할 기호가 없다면, 그 음악은 작곡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악보 기호는 그 소리를 종이 위에 고정시키는 수단이다. 음표 하나가 음높이와 길이를 동시에 담고, 셈여림 기호가 강약을 지시하고, 이음줄과 스타카토가 연주 방식을 규정한다. 기호가 풍부할수록 작곡가의 의도는 더 정밀하게 기록된다.
기하공차라는 악보
기하공차는 악보 기호와 같은 수단을 제공한다. 모양, 자세, 위치를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기호들, 그리고 그 기호들과 함께 작동하는 수식어와 조건들이 얽혀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 설계자는 이 체계를 통해 형상의 정밀함, 면과 면 사이의 관계, 기준축에 대한 위치와 자세, 조립 시 요구되는 기하학적 조건을 도면 위에 구체적으로 새길 수 있다. 타악기 악보에 음정과 화성을 더한 것이 정식 악보이듯, 치수공차에 형상·자세·위치를 담을 기호를 더한 것이 기하공차다. 치수공차가 표현하지 못했던 평면, 평행, 위치의 조건이, 이제는 기호로 명확히 기록된다. 설계자의 머릿속에 있는 의도를, 치수공차로는 도달할 수 없었던 정밀한 지점까지 언어화할 수 있다.
그런데 어휘가 풍부하다는 것이 곧 유창하다는 뜻은 아니다.
악보를 완벽하게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음표의 이름을 알고, 셈여림 기호의 의미를 알고, 조표와 박자표를 정확히 해석한다. 하지만 그것이 곧 좋은 연주로 이어지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악보에 적힌 음을 소리로 옮기는 것과, 그 음악이 담고 있는 흐름과 감정을 살려 연주하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기하공차도 마찬가지다. 기호들의 이름을 익히고 정의를 줄줄 말할 수 있다고 해서 도면을 유창하게 읽거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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