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차가 제조비용을 결정한다
공대를 졸업하면 다들 각자의 길을 간다. 어떤 친구는 삼성에서 스마트폰을, 어떤 친구는 한국항공우주산업에서 항공기를, 어떤 친구는 현대중공업에서 배를 설계한다. 졸업 후 몇 년이 지나 간만에 모인 술자리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
스마트폰 기구설계를 하는 친구가 먼저 운을 뗐다. 살짝 취기가 오른 눈으로 테이블을 탁 치면서 말했다.
야, 너희 그거 알아?
내가 요즘 설계하는 카메라 모듈 공차가 얼마인지.
100분의 1밀리미터야.
0.01.
그게 안 맞으면 사진이 흔들려.
수억 명이 매일 쓰는 폰이라고.
항공기 구조설계를 하는 친구가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100분의 1? 그거 우리한테는 그냥 공차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우리 엔진 터빈 블레이드 공차가 만분의 1밀리미터야.
0.0001.
그게 0.001만 벗어나도 엔진이 나가.
사람이 하늘에 있는 상태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조선 구조 설계를 하는 친구가 소주를 한 잔 천천히 비우고 나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리는 그냥 딱 맞게 만들어.
둘이 동시에 뒤집어졌다. "딱 맞게가 뭐야, 딱 맞게가." "공차가 얼마냐고." 조선 엔지니어는 그냥 웃기만 했다.
웃자고 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 짧은 대화 안에 제조 현장의 핵심 문제가 압축되어 있다. CAD 모델은 완벽하다. 치수는 정확하고, 형상은 이상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가공된 부품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딱 맞게 만든다"는 말은 없는 것과 같다. 얼마나 맞아야 딱 맞는 것인지 정의하지 않으면, 만드는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진다.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이든, 항공기 터빈 블레이드든, 수만 톤짜리 선박의 엔진 샤프트든 마찬가지다.
이 간극을 메우는 것이 바로 공차다. 공차는 단순히 허용 오차를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설계자와 제조자, 검사자 사이의 공통 언어다. GD&T(기하공차)가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호함 없이 설계 의도를 전달하고, 제조와 검사의 기준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서다.
도면은 완벽하지만, 부품은 그렇지 않다
SME(미국 제조공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제조업체의 70%가 공차를 제조비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꼽는다. 그런데도 설계 단계에서 공차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공차를 많이 붙일수록 좋다는 오해, 혹은 아예 공차를 붙이지 않는 관행이 동시에 존재한다.
CAD 모델은 완벽하다. 치수는 정확하고, 형상은 이상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가공된 부품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이 간극을 공차가 채운다. 공차는 단순히 허용 오차를 숫자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설계자와 제조자, 검사자 사이의 공통 언어다. GD&T(기하공차)가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호함 없이 설계 의도를 전달하고, 제조와 검사의 기준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서다.
SME(미국 제조공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제조업체의 70%가 공차를 제조비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꼽는다. 그런데도 설계 단계에서 공차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공차를 많이 붙일수록 좋다는 오해, 혹은 아예 공차를 붙이지 않는 관행이 동시에 존재한다.
공차와 제조비용은 반비례하지 않는다
많은 엔지니어들이 공차를 타이트하게 잡을수록 품질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비용 측면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차가 타이트해질수록 다음과 같은 비용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더 정밀한 장비가 필요하고, 숙련도가 높은 작업자가 요구된다. 가공 속도를 낮춰야 하고, 검사 공정이 복잡해진다. 기준에 미달하는 부품은 스크랩되거나 재가공된다. 미시간 대학교의 연구는 공차를 10% 줄이면 제조비용이 최대 20% 감소할 수 있다는 결과를 보고한다. 반대로 불필요하게 타이트한 공차는 같은 비율로 비용을 끌어올린다.
반면 공차가 너무 느슨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조립 불량, 기능 미달, 현장에서의 재작업이 발생한다. 비용은 설계 단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훨씬 늦은 시점에, 훨씬 큰 규모로 터진다.
결국 공차는 타이트할수록 좋은 것도, 느슨할수록 좋은 것도 아니다. 기능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최적의 공차가 존재하고, 그것을 설계 단계에서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다.
공차를 잘못 적용하면 생기는 세 가지 결과
공차 적용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피쳐마다 의도를 갖고 공차를 부여하는 방식,
둘째는 도면 전체에 일반공차를 적용하는 방식,
셋째는 공차를 아예 붙이지 않거나 잘못 붙이는 방식이다.
공차가 없는 경우를 먼저 보자. 부품은 일단 만들어지지만, 조립 시 맞지 않는다. 재작업이 발생하고, 불량률이 높아진다. 문제는 이것이 설계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제조 현장에서 비용으로 청구된다는 점이다.
반대로 공차를 과도하게 붙인 경우를 보자. 특수 공구가 필요해지고, 가공 사이클 타임이 늘어난다. 일반 장비로는 생산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비용과 납기가 동시에 악화된다. 공차가 너무 많아도 결국 공차가 없는 것과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적절한 공차를 부여했을 때는 어떨까. 기준이 되는 파트 대비 사이클 타임 증가는 미미하고, 비용 증가도 1% 미만에 그칠 수 있다. 그 대신 조립 신뢰성은 확보되고, 반복 생산이 가능해진다. 설계 단계에서 치른 작은 비용이 이후 공정에서 훨씬 큰 비용을 막는다.
LEGO가 가르쳐주는 것
LEGO 블록 하나를 생각해보자. 단순해 보이는 이 블록에도 수개월의 공차 설계가 들어간다. 치수를 밀리미터 단위로만 지정하면 어떻게 될까. 어떤 블록은 너무 타이트하고, 어떤 블록은 너무 헐겁다. 어셈블리는 무너진다.
LEGO가 전 세계 어디서 사온 블록이든 서로 딱 맞는 이유는 엄격한 공차 관리 때문이다. 복잡한 항공 부품이나 자동차 어셈블리도 마찬가지다. 공차가 잘 설계되어 있을 때 비로소 복잡한 시스템이 예측 가능하게 작동한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 공차는 설계 단계에서 부여해야 한다. 제조 단계에서 뒤늦게 수정되는 공차는 이미 발생한 문제를 수습하는 것에 불과하다. 설계자가 공차를 결정하는 순간이 비용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공차는 설계자의 언어다
공차를 단순히 허용 오차의 범위로만 이해하면 놓치는 것이 많다. 공차는 제조 공정의 선택을 결정하고, 조립 신뢰성을 좌우하며, 제품 수명과 직결된 설계 의사결정이다.
GD&T 체계가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데이텀 피쳐를 명확히 하고, 공차영역의 형상과 크기와 위치를 체계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단지 도면 표기법의 문제가 아니다. 설계 의도를 모호함 없이 전달하고, 불필요한 제조 비용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엔지니어링 언어다.
설계 단계에서 적절한 공차를 부여하는 것은 비용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다. 이후에 발생할 훨씬 큰 비용을 사전에 제거하는 일이다. 정밀도에는 대가가 따른다. 하지만 그 대가를 언제, 어떻게 치르느냐는 설계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