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13 설계-생산-품질과 고객이 싸우는 진짜 이유
"왜 또 불량이 나왔어?"
"이 도면대로 만들 수가 없다고!"
"검사 기준이 애매해서 판정을 못하겠어!"
"지난번과 이번이 왜 이렇게 달라?"
제조업 현장에서 이런 대화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설계-생산-품질 부서와 고객 간 갈등의 현실을 목격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각자 다른 요구사항 때문에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같은 부품을 놓고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항상 대립할 수밖에 없을까?
설계부서: "기능만 보장되면 돼"
설계자의 입장에서 보면 간단하다. 부품이 설계 의도대로 기능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능'이라는 것을 도면에 명확히 전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 불필요하게 엄격한 공차를 지정해서 제조비용을 급증시킨다.
- 반대로 중요한 부분의 공차를 놓쳐서 기능 불량을 일으킨다.
- 도면 해석의 여지를 남겨둬서 생산과 품질 부서를 혼란에 빠뜨린다.
설계자는 늘 이런 질문에 시달린다: "이 공차가 정말 기능에 필수적인가? 생산비를 고려했을 때 현실적인가?"
생산부서: "만들 수 있게 해달라"
생산 현장에서는 현실이 다르다. 아무리 완벽한 도면이라도 실제 가공에서는 항상 편차가 발생한다. 기계의 한계, 소재의 특성, 작업자의 숙련도까지 모든 것이 변수가 된다.
- "이 공차로는 수율이 너무 떨어져요"
- "도면은 이렇게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이게 더 중요한 것 같은데요?"
- "검사에서는 합격인데 조립하면 문제가 생겨요"
생산부서는 효율적인 공정을 원하지만, 도면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늘 추측에 의존하게 된다.
품질부서: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품질팀은 가장 애매한 위치에 있다. 설계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로 도면의 숫자만 보고 판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다 보니:
- 기능적으로는 문제없는 부품을 불합격 처리하기도 한다.
- 반대로 기능상 문제가 있는 부품이 검사를 통과하기도 한다.
- 불합격 부품이 나와도 근본 원인을 찾기 어렵다.
"이게 정말 중요한 치수인지, 아니면 그냥 참고용인지 알 수가 없어요"라는 말이 품질팀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하소연이다.
고객: "그냥 제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된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요구를 하는 것이 바로 고객이다. 고객은 복잡한 제조 공정이나 부서 간 갈등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하나만 원한다: 문제없이 작동하는 제품.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세 부서의 소통 부재는 결국 고객에게 이런 영향을 미친다:
- 간헐적 불량: 가끔씩 작동하지 않는 제품이 배송되어 신뢰도가 떨어진다.
- 과도한 품질 비용: 불필요한 엄격함으로 인한 원가 상승이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
- 일관성 부족: 같은 모델인데도 개체별로 성능 차이가 발생한다.
- AS 증가: 기능 문제로 인한 수리 요청이 빈번해진다.
특히 자동차나 전자제품처럼 안전과 직결되는 제품에서는 이런 문제가 치명적이 될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는 "왜 이렇게 간단한 것도 제대로 못 만드나?"라는 불만이 생기게 된다.
갈등의 진짜 원인 : 소통 언어의 부재
네 주체가 싸우는 진짜 이유는 능력 부족이나 책임감 부족이 아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계는 '기능' 중심으로 생각하고, 생산은 '공정' 중심으로 접근하며, 품질은 '규격' 중심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고객은 '결과' 중심으로 평가한다. 이 네 가지 관점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할 때 갈등이 시작된다. 저품질 소통으로 인해:
- 기능에 문제없는 부품도 폐기되어 원가가 상승하고, 이는 제품 가격에 반영된다.
- 진짜 문제가 있는 부품이 고객에게 전달되어 불만과 AS 비용이 증가한다.
-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해서 브랜드 신뢰도가 하락한다.
- 고객은 "왜 매번 다른 품질의 제품이 오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제조사 내부의 소통 문제가 고객 경험의 일관성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자동차 산업처럼 안전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이런 소통 오류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GD&T : 하나로 묶는 공통 언어
GD&T(기하공차)는 단순한 표기법이 아니다. 설계-생산-품질-고객이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이다. GD&T의 목적은 하나로 요약된다: 부품이 제대로 기능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철학을 바탕으로 GD&T는:
- 부품 기능에 중요한 부분은 엄격하게 관리한다.
- 기능과 무관한 부분은 공차를 완화해서 제조 유연성을 높인다.
- 모든 부서가 동일한 기준면(DRF)과 측정 방법을 사용하게 한다.
각 부서별 GD&T 활용법
설계부서의 변화: 설계자는 이제 명확한 질문을 할 수 있다:
- "이 공차가 기능 구현에 정말 필수적인가?"
- "양품은 합격시키고 불량품은 확실히 걸러낼 수 있는가?"
- "불필요한 공차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 "제조 유연성을 위해 공차를 완화할 수 있는 부분은 없는가?"
GD&T를 활용하면 실제 생산 상황에 따라 다양한 공차를 허용하면서도 기능은 보장할 수 있다.
생산부서의 변화: 생산팀은 이제 추측이 아닌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정을 설계할 수 있다:
- 어느 부분이 정말 중요한지 명확히 안다.
- 공통의 기준면(DRF)을 바탕으로 기계 설정을 할 수 있다.
- 소프트웨어 기능 게이지를 활용할 수 있다.
- 기능적 의도를 이해하고 최적의 가공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품질부서의 변화: 품질관리팀은 마침내 명확한 기준을 얻게 된다:
- 설계 의도대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 기능적으로 동일한 기준면(DRF)에서 검사한다.
- 불합격 부품의 근본 원인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편차가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고객이 느끼는 변화: 고객은 GD&T의 존재를 직접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효과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 제품 품질의 일관성이 크게 향상된다.
- 기능 불량으로 인한 AS 요청이 현저히 감소한다.
- 같은 모델이라면 언제 구매해도 동일한 성능을 기대할 수 있다.
- 전체적인 제품 신뢰도가 높아져서 브랜드에 대한 만족도가 상승한다.
무엇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문제없이 잘 작동하는 제품". GD&T는 이 단순한 요구를 확실히 보장해주는 도구다.
모두가 Win-Win하는 결과
GD&T를 제대로 도입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비용 절감: 불필요한 엄격함을 제거하고 진짜 중요한 부분에만 집중해서 전체적인 제조비용이 감소한다.
품질 향상: 기능 중심의 명확한 기준으로 진짜 불량품만 걸러내고 양품은 확실히 통과시킨다.
효율성 증대: 부서 간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들고, 같은 목표를 향해 협력할 수 있게 된다.
고객 만족: 기능적으로 완벽하고 일관된 품질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어 브랜드 신뢰도가 향상된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한 가지
복잡한 GD&T 이론을 모두 외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잊지 말자:
"GD&T는 부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데 사용된다"
이 원칙만 기억하면, 어떤 복잡한 상황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설계-생산-품질 세 부서가 서로 다른 언어로 싸우는 대신, 고객이 원하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결국 우리 모두의 목표는 하나다.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제대로 기능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 말이다.